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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 건축사 시험

고구려 건축, 백제 건축, 신라 건축, 통일 신라 건축, 고려 건축

by younga97 2022.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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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건축

고구려 시대의 사람들은 지리적인 위치상 전쟁을 많이 겪어서 용맹하고 강하며 진취적이었다. 또한, 외래의 문화를 받아들여 고구려인들의 생활에 맞게 발전시키는 데 적극적이었다. 그래서 건축, 공예, 그림 등의 규모가 크고 장엄하며 남성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고구려의 건축물은 몇 군데의 유적과 무덤 등에서 유추할 수 있다. 고구려 건축의 일반적인 형식은 중국의 한나라 양식을 많이 사용하여 화려하고 큰 궁궐, 저택, 불교 사찰 등을 지었다. 그 유적지에서 발견되는 주춧돌이나 기와 조각, 벽돌 토막 등을 보면 당시의 건축 기술을 알 수 있으며, 무덤의 기둥이나 벽면에 표현된 구조 양식은 당시에도 발전된 건축 방식을 사용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규모가 큰 무덤은 주실과 전실로 구성되었고 각 종 벽화로 벽면을 장식하였다. 주실은 벽의 윗부분 모서리를 삼각형으로 내쌓아 팔각형으로 만들고 다시 삼각형 내쌓기를 반복하여 천장을 구성하여 완성한 것으로 돌을 다루는 건축 기술이 우수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백제 건축

백제는 지리적인 위치상 중국 한문화의 영향을 받았고, 고구려와 접촉하고 중국의 여러 나라와의 교류를 하여 우아하고 세련된 문화를 가질 수 있었다. 그렇게 구축한 문화를 신라와 일본에 전해 그들의 문화가 발달할 수 있게 하였다. 

백제의 건축물에 대한 자료나 유적이 거의 남아있지 않아서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신라와 일본에 남겨놓은 유적들로 유추하면 백제 문화의 수준이 매우 우수하였음을 알 수 있다. 건물의 흔적이 남아 있는 몇 개의 유적과 기록을 통해 백제의 건축은 목조로 된 궁궐과 불교 사찰에 대한 건축 기술이 훌륭했다고 생각된다. 

 

신라 건축

고대 3국인 고구려, 백제, 신라 중에서 신라의 문화 발전이 가장 늦었으나 고구려와 백제의 문화를 수입하고 불교를 바탕으로 독창적인 문화를 창조하였다. 신라 시대에는 경주 지역에 궁궐과 사찰을 많이 지었으며 고구려, 백제와 거의 같은 양식으로 건축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라는 책에 의하면 신라 시대에는 신분에 따라 주택의 크기와 구조를 제한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고구려를 통해 불교가 전해진 후 많은 사찰이 건축되었다. 흥룡사, 영흥사, 황룡사, 분황사가 이 시대에 지어진 사찰이다. 황룡사는 신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사찰이지만 고려 시대에 몽고군의 침략에 의해 붕괴되었다. 신라 시대의 건축은 대부분 없어졌으나 첨성대, 분황사 석탑, 석빙고 등이 남아 있어서 그 당시의 우수한 건축 기술을 유추할 수 있다.

 

통일 신라 건축

고구려, 백제, 신라를 통일한 통일 신라 시대에는 고구려와 백제의 문화유산을 발전시켜 계승하였다. 또한 중국의 당나라 문화를 받아들여 불교화 호국 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독자적이고 세련된 문화로 발전시켰다.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 지역이 커지면서 황룡사를 중심으로 새로운 모습을 갖추었다. 

문무왕 14년(674년)에 완성된 안압지는 동궁인 임해전의 북동쪽에 만든 인공 연못으로 사용된 건축 부재와 유물을 통해 당시의 정원과 연못의 원형과 조원술이 우수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탑을 중심으로 배치 계획을 하던 이전과는 달리 불상을 모신 금당을 중요시하여 금당 앞에 2개의 탑을 축조한 2탑식 가람 배치가 도입되었다. 

 

고려 건축

불교를 중심으로 통일 신라의 문화를 그대로 계승하여 발전시켰으며 중국 송나라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13세기 이후에는 원나라와 몽고의 문화가 많이 들어와서 고려 시대 문화의 순수성이 떨어지고 불교가 타락하여 자주적인 문화를 이루지 못하고 쇠퇴하게 되었다.

고려 시대의 목조 건축은 통일 신라의 건축 양식을 바탕으로 한 주심포식 건축 양식이 주류를 이루었다. 고려 말기에는 몽고에 의해 지배를 받게 되어 다포 양식을 도입하여 한국의 중세 이후 건축 양식은 주심포식과 다포식 건축물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 주심포식과 다포식 ]

기둥머리에 얹힌 공포의 위치와 수로 구분한다. 공포는 중국 한나라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깊은 처마의 무게를 받들게 하기 위한 구조적인 조립재이다.

고려 시대 초기에 사용된 주심포식에서는 공포를 기둥 위에만 배치하고 하중을 공포가 기둥에 전달하는 형식이다. 봉정사 극락전, 부석사 무량수전, 수덕사 대웅전, 강릉 객사문이 주심포식으로 건축되었다.

고려 시대의 말기에 사용된 다포식은 공포를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 위치한 창방 위에 평방을 올린 다음 평방 위에 공포를 구성한 것으로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공포가 올려진 형식이다. 그래서 하중을 공포가 받아서 평방에 전달한 다음 기둥으로 전달하게 한다. 해주의 심원사 보광전, 석왕사 웅진전 등이 다포식으로 건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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